‘치매 명의’ 김시효 킴스패밀리의원·한의원 원장과의 대화는 그의 암 투병 이야기를 넘어 그가 오랫동안 연구하고 임상 진료한 치매의 치료와 예방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의사와 한의사를 겸하다
―의사가 의원과 한의원을 동시에 개업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언제부터 동시 진료했나?
“1988년에 서울 송파구 올림픽선수촌에서 가정의학과 전문의로 개업을 했다. 이후 2000년에 경희대 한의과대학에서 한의사 과정도 마쳤는데, 당시 법으로는 의사나 한의사 중 하나만 개업을 해야 했다. 그래서 양의 쪽으로 계속 진료를 했다. 2002년에 의사와 한의사를 동시에 개업할 수 있도록 법이 개정돼, 그 때부터 의사와 한의사 진료를 동시에 하고 있다.”
―치매 진료를 전담하게 된 계기는?
“한 10년이 넘은 것 같다. 2002년부터 의사와 한의사로 동시에 진료를 하다 보니 의학적 난치병에 한의학적 치료가 효과를 내는 임상 경험을 여러차례 했다. 그러다가 5세 때부터 내 병원에 다니던 23세 청년이 2010년 쯤에 찾아왔다. 군 제대를 한 뒤 큰 대학병원 2곳에서 70대 노인의 뇌라고 진단을 받고 치료를 했으나 효과를 보지 못하자 한약을 써보기 위해 나를 찾아 왔다고 했다. 2년 정도 치료한 이후에 거의 완치가 되어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했다.
비슷한 시기에 91세 할아버지 환자가 있었다. 걷지도 못하고 누워 있고, 대소변도 못가리고, 밥도 떠먹여 주고, 헛것을 보고, 잠도 자지 않았는데, 11개월 치료를 받자 제반 증상이 호전되어 본인이 직접 걸어서 병원에 왔다. 이런 치료 과정을 통해 나는 뇌 세포의 재생은 불가능하지만 활력이 떨어진 뇌세포의 활력을 회복하는 재활은 가능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김 원장이 이어 치매에 걸렸던 장모 이야기를 꺼냈다.
“그 즈음에 장모님이 치매로 아산병원에서 3년간 약을 타서 드시고 있었다. 그런데 급속하게 상태가 나빠져서 혼자 생활을 할 수 없어서 집으로 모시고 와 한의학적 연구와 치료를 적극적으로 했다. 이후 이사 온 동네 노인정 할머니들에게 평양만두 만드는 법을 가르칠 정도로 많이 호전됐다. 이렇게 우연히 치매 환자들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치료하다 보니 치매 진료를 전문으로 하게 됐다.”
치매가 무서운 이유
치매에 관해 본격적인 질문을 시작했다.
―치매가 왜 무서운가?
“치매는 쉽게 이야기하면 정신이 나가는 병이다. 치매의 영어 단어 dementia는 라틴어 de(~로부터 나간)+mens(정신)+ia(상태)의 합성어에서 유래했다. 정신이 나가면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자신의 인생길을 알지 못하고 잠시도 자신의 인생길을 제대로 운전할 수 없다. 자신의 삶에 대한 결정권도 없게 되고 주변의 사람이 이끄는 대로 끌려가야 한다. 주변 사람들의 삶도 피폐하게 만든다.
비유하자면 만취로 정신이 나간 사람이 인생길을 운전하는 것과 비슷하다. 본인은 제대로 운전을 못해서 자기 의사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고, 옆에서 간병하는 사람은 사고가 안나도록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으니 인생이 피폐해지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다 그래’ ‘설마 내가 치매가 되겠어’라고 가볍게 생각하는 것이 치매의 온상이 된다. 시간이 지나면 결국 치매가 되어 우리의 인생과 주변 사람들의 생활을 치명적으로 파괴한다.”
